나꼼수 머무르지 않는 생각

나는 나꼼수를 듣는다. 낄낄거리면서.

나꼼수를 비판하는 사람이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

나꼼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줄 뿐이라고들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이명박을 까는 일이 무슨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고 비판한다. 역시 맞는 말이다.
"그 사람 눈을 보면 알아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는 식의 비논리를 비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꼼수는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숙하고 심각할 뿐이던 정치를 논리있어야 한다는 강박없이 생활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차마 입밖으로 내어 비판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컨텐츠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해버리고 만 것이요,
그 에너지가 의미있는 운동으로 (아직은) 변환되지 못한 것일 게다.
나꼼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나꼼수를 듣는 대중 대부분이 나꼼수를 통해서'만' 정치를 듣고 이야기한다는 게 문제다.

나꼼수를 비판하려면
그 카타르시스로, 그 키들거림으로 모인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카타르시스와 키들거림으로 끝날 게 아니라, 다음 지평으로 어떻게 나아갸야할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물론 그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 다음 지평으로 나아가야할 사람,
그런 의무가 있는 사람은 그 4인방만이 아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키들거린 우리 모두요, 나꼼수를 존나 까고 있는 진보진영의 모두다.

자기 배려

나는 어쩌면 이제서야 온전한 나로서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을 준비가 끝난 것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머무르지 않는 생각

이틀 후면 집으로 돌아간다.
와서는 이민을 심각히 알아볼 정도로 이곳이 좋았고,
갈 때가 되니 돌아가 새로이 벌일 일들에 가슴이 뛰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여행이었구나 싶다. 아, 여행이라기보단 체류가 맞을까?

그래도 이곳을 떠나면 그리울 것은
달디 단 공기, 해발 2천미터 산으로 둘러쌓인 맑디 맑은 호수.
우리나라 돼지고기보다 싼 뉴질랜드산 청정 소고기.
두바이 6성급 호텔에 납품된다는, 한우값보다 훨씬 싼 연어.
맛있는 빵, 햄, 치즈.
이곳에서만은 부채의식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 스포츠, 골프.
그리고 무엇보다도, 느리게 걷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건네는 이곳의 '행복한' 사람들.

또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이곳을 찾게 되겠지.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 머무르지 않는 생각

생각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은 보석같다.
그런 시간이 새로운 진실에 눈뜨게 한다.
새로운 길로 발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준다.

느린 걸음이 새로운 걸음을 걷게 해준다.


정치 머무르지 않는 생각

몇년을 사귀며 곱씹고 곱씹어 결혼을 한 배우자도,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자식도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인데,
좋은 인물 하나 뽑아 놓으면 내가 원하던 나라를 만들어 줄거란 생각은 환상이다.

서울시장이든, 대통령이든 좋은 사람을 뽑아야겠지만, (이건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모처럼 저만하면 좋겠구나싶은 사람이 나온 것도 기쁜 일이겠지만,
인물에 일희일비하는 정치의식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원하는 것을 소리 높여 말하지 않으면,
아니 원하는 것을 스스로 손을 더럽혀가며 얻어내지 않으면,
어떤 "인물"도 내가 원하는 것을 대신해서 가져다 주진 않는다.
그게 정치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사장님이든, 동료든.

그러니 민주주의는 투표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행동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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