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꼼수를 듣는다. 낄낄거리면서.
나꼼수를 비판하는 사람이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
나꼼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줄 뿐이라고들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이명박을 까는 일이 무슨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고 비판한다. 역시 맞는 말이다.
"그 사람 눈을 보면 알아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는 식의 비논리를 비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꼼수는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숙하고 심각할 뿐이던 정치를 논리있어야 한다는 강박없이 생활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차마 입밖으로 내어 비판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컨텐츠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해버리고 만 것이요,
그 에너지가 의미있는 운동으로 (아직은) 변환되지 못한 것일 게다.
나꼼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나꼼수를 듣는 대중 대부분이 나꼼수를 통해서'만' 정치를 듣고 이야기한다는 게 문제다.
나꼼수를 비판하려면
그 카타르시스로, 그 키들거림으로 모인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카타르시스와 키들거림으로 끝날 게 아니라, 다음 지평으로 어떻게 나아갸야할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물론 그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 다음 지평으로 나아가야할 사람,
그런 의무가 있는 사람은 그 4인방만이 아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키들거린 우리 모두요, 나꼼수를 존나 까고 있는 진보진영의 모두다.
나꼼수를 비판하는 사람이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
나꼼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줄 뿐이라고들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이명박을 까는 일이 무슨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고 비판한다. 역시 맞는 말이다.
"그 사람 눈을 보면 알아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는 식의 비논리를 비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꼼수는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숙하고 심각할 뿐이던 정치를 논리있어야 한다는 강박없이 생활 속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드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차마 입밖으로 내어 비판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컨텐츠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컨텐츠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해버리고 만 것이요,
그 에너지가 의미있는 운동으로 (아직은) 변환되지 못한 것일 게다.
나꼼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나꼼수를 듣는 대중 대부분이 나꼼수를 통해서'만' 정치를 듣고 이야기한다는 게 문제다.
나꼼수를 비판하려면
그 카타르시스로, 그 키들거림으로 모인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카타르시스와 키들거림으로 끝날 게 아니라, 다음 지평으로 어떻게 나아갸야할 것인지를 물어야할 것이다.
물론 그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 다음 지평으로 나아가야할 사람,
그런 의무가 있는 사람은 그 4인방만이 아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키들거린 우리 모두요, 나꼼수를 존나 까고 있는 진보진영의 모두다.
태그 :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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